고등학생때였나. 도서관에서 머리도 식힐 겸 시집 코너를 돌았는데 그때 문득 집었던 시집이 원태연 시인의 작품집이었다.

머리가 복잡했던 내게 기다랗게 이어지던 시들은 그 당시 별 매력을 주지 못했다. 원태연 시인의 시는 짧고 강렬했다. 혼자 키득키득대다가, 소름이 돋았다가, 슬퍼졌다. 부랴부랴 수첩을 꺼내 몇 편 적었는데 오늘 책상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여전히 보면서 혼자 키득키득대다가, 소름이 돋았다가, 슬퍼졌다.

 매력적인 시들이다.

원태연 시인 흥해랏.

 

 

시간없다고

                원태연

 

내가 빌려줄게.

내 시간

니가 다 써.

 

 

 

 

 

나의 이별

                원태연

 

그녀는 한번 돌아보았다.

조금 걷다

그녀는 두번 돌아보았다.

조금 더 걷다

그녀는 세번 돌아보았다.

그녀는 돌아만 보았다.

내가 불러주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계속 돌아보며 걸었다.

 

 

 

 

 

 

정체

           원태연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나.

그렇다면 너는 바람이었을까?

 

 

 

 

 

 

 

타살

          원태연

 

저녘 나절

자기가 보낸 하루에 찌들어

절망하는 친구에게

술을 사주었다.

그 친구가

아침에 찾아왔다면

눈 뜨자마자

책임져야할 하루에 눌려

버둥대고 있었다면

가지고 있던 쥐약을

나누어 마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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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는 말은 언제나 멀고 생경하게 느껴진다. 프레스 기계에 눌려서, 커다란 배에 갇혀서 소중한 사람들이 죽었다.

나는 그 사람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생전에 본 적도 없지만 '죽었다'는 말이 자아내는 멀고 생경한 느낌은 너무 강렬해서 무시할 수가 없다.

왜 나와는 멀어보이는 그 단어가 그렇게 강력하게 작동하는가.

어쩌면 일본 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말이 내 물음에 답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는 후쿠시마 지진 피해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지진을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하면 피해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2만 건 있었다'고 이해해야 한다."



어쩌면 아직은 멀어보이는 '죽음'이란 단어가 신문에 나올 때 갑자기 덜컹하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아무리 멀어도 지금 눈을 감은 그 누군가가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와 같이 웃고, 사랑하고, 고민하고, 꿈을 꿨을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 사람 한 사람으로, 기억하겠다.




박진의 세상읽기 '빈관' (한겨례신문 등록 :2017-11-21 18:07수정 :2017-11-21 19:13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00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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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Sundance Girl의 주인공은 <Patti Cake$>의 주인공 Patti였다.


선댄스 영화제 드라마 경쟁부문에 상영되었던 본 영화는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화려한 데뷔에 성공했다. 이후 'Rotten Tomato'에서 82%의 신선지수를 받으며 나름 흥행작이 되었다.


<줄거리>

 Patti는 래퍼가 되고 싶은 고등학생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을 잘 때까지 패티는 끊임없이 랩을 만들어낸다. 지긋지긋한 이 생활을 정리하고 뉴욕으로 가서 랩스타가 될 거야! 패티의 랩은, 정말 핵소름. 실력이 장난 아니다. 

그러나 패티는 여자라는 이유로, 뚱뚱하다는 이유로 소위 '거친 남자들의 힙합세계'에서 무시 당한다. 게다가 패티는 랩을 붙여낼 음악을 작곡할 능력도, 크루도 없다. 여러모로 패티는 앨범을 내고, 자신을 홍보하는데 애를 먹는다. 

 한편 왕년에 가수였던 패티의 엄마 Barb는 성공 직전까지 갔다가 추락해버린 후 과거의 영광에 매여 산다. 동네 바에서 아저씨들을 상대로 노래를 부르며 당시의 추억에 잠기는 것이다. 물론 성공은 다시 오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알고 있다. 단지, 아주 가까이 왔다가 사라져버린 과거의 꿈을 버릴 수가 없어 붙들고 있을 뿐이다. 패티는 그런 엄마의 모습에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술에 절어 살며, 동네 아저씨들의 추파를 온 몸으로 받고 있는 엄마는 맘에 들지 않지만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엄마는 아름답다. 소중하다.(이런 부분이 섬세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The Final Girl>과 함께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뭉클하게 풀어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고이고이 간직할 영화 목록에 올렸다. 모녀 간의 미묘한 관계만큼 풀어내기 어려운 것도 없을 것이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모녀 간에 존재하는 건 순수한 사랑도 아니요, 증오도 아니요, 뒤죽박죽 섞인 정체모를 응어리다. 그건 때론 누구보다도 잔인한 미움으로 때론 엄청난 사랑으로 튀어나오는데 그 순간이라는 게 참, 미묘하고 충동적이기까지 해서 포착해내는 게 쉽지 않다. 지금까지 본 영화(많이 보진 않았지만) 중에선 앞서 언급한 <더 파이널 걸>과 본 영화가 그 미묘한 관계과 감정표출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안의 무언갈 건드려서 펑펑 울게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사실, 이 영화가 '꿈'에 대해 얘기할 때 귀기울여 들을 수 있는 것도 그 꿈이 patti의 꿈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패티와 바바라의 꿈에 대해 얘기한다. 뻔할 수 있는 청춘영화가 특별해지는 지점이다. 패티는 래퍼라는 꿈을 갓 꾸기 시작했고 바바라는 가수라는 꿈을 너무 오래 '꾸기만' 해서 현실로 차마 돌아올 수가 없다. 물론 영화를 보면 깨닫겠지만, 두 인물의 꿈은 모두 아름답고 값지다.



<뽀인트>

영화 내내 패티가 크루를 찾고 함께 음악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즐겁고 애틋하고 SWAG가 넘친다:) 근위축병에 걸린 할머니, 아웃사이더 Freak이라 불리는 남자애, 역시나 아웃사이더에 junky인 베프까지. 설정만 보면 비호감이겠지만 사실 영화 속에서 이 캐릭터들은 하나하나가 사랑스럽다.  

후반부엔 이야기가 패티와 엄마에게 집중되는데, 보고 있는 동안 울 수 밖에 없었다.(후훗. 장담컨데 본인이 딸일 경우, 정말 100% 울 것이다.) "TUFF LOVE!!!" 그렇다. 보면 알게 될 운명적인 문장. 또 눈물이...


<한줄평>

힙합, 페미니즘(난 그렇게 느꼈는데,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겠다), 모녀지간, 꿈, 스윀! 

화려하지 않고, 촌구석 얘기고, 배경도 황량하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도 이글거리는 영화다:) 

어느샌가 등장인물들의 꿈을 응원하게 될 것이다. 


백점만점. 

무튼 나한테는 그랬다.



Patti Cake$ Trailer

https://youtu.be/L-591Dqa48g



Patti Cake$ "PBNJ" 중독성 강한 OST

https://youtu.be/0T-g-RwmM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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