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가족의 세상 "Dogtooth"

 

***본 리뷰는 작품 줄거리,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완전 극단적으로 '군림하는' 아버지 밑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

이라는 대략적인 설명만 읽었을 때에도 대충 결말이 예상되었다.

그래, 아이들 중 한 명이 아버지의 세상에서 탈출하겠구나. 그리고 아마 여자가 탈출하겠지. 대체로 가부장제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주인공이 되는 건 여자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런 내용이다.

아무렇지 않게 포착되는 적나라한 성적, 폭력적 장면들 때문에 많이 놀라면서 봤다.

회색빛, 혹은 흰색의 장면들에 갑자기 붉은 피가 튀면 얼마나 불편한 느낌을 주는지 새삼 깨달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지만 그게 또 우화의 매력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결말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몇몇 장면과 설정들이 섬세하고 매력적이라 끝까지 무사히(?) 볼 수 있었다!

 

<캐릭터들>

제일 큰 애.

담장 너머에 자기 형이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가끔 담장에 대고 얘기한다.

(내가 형보다 잘났다는 걸 알아줬음 해.)

이 장면이 정말 섬뜩하고 기이해서 캡쳐를 많이 했다..호오.

무튼 첫째는 몸만 컸지 어린 애다. 나는 사실, '성인 남자의 몸에 어린 아이의 정신 조합'을 좀 많이 불편해하고 무서워하는 편이라

이 캐릭터 나올 때마다 굉장히, 굉장히 껄끄러웠다.

 

얘는 잠자다 깨서 무서우면 서슴없이 부모 방에 들어가서 잔다.

완전 정신은 애인 상태.

엄마가 아니라 아빠를 껴안고 자는 게 포인트.

 

아버지

가족의 세계를 구축한 장본인.

도대체 왜?라는 질문에 끝까지 대답하지 않는다.

중간에 '개가 주인을 잘 지키도록 훈련한다'는 조련사의 말에 동의를 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혹시 자식을 그런 개념으로 보는 건지..? 그래서 기이한 가정을 만든 건지? 추측만 할 뿐이다.

무튼, 아버지의 권력을 아주 마음껏 발휘하는 인물.

이렇게 별볼일 없이 생긴 사람이지만, 가족의 세계에선 일인자다. 가족 중 아무도 아버지의 명령에 불복종할 생각을 안 한다.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르면 아버지의 벌(폭력)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건 가족들에게 아주아주 당연한 일이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 아버지가 정한 '규칙'이니까.

 

 

크리스티나.

영화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나오는 사람이 아닐까.

몸은 큰 아들의 성적 욕구 해소를 위해(혹은 다른 의도가 있었던 걸까? 사실 대사로는 나오지 않는다.) 고용한 여자다.

원래 직업은 아버지가 일하는 공장의 경비원이다.

이 사람이 아버지의 딸에게 영화 비디오('록키', '딥블루씨' 같은데..정확하진 않다.)를 뺏기면서

아버지의 완벽한 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셋째

역시나 몸은 컸어도 어린 애다. 남이 하는 말을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버지 말은 물론 언니 말도 마찬가지다. 본인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감정과 생각을 표현한다. 한마디로 단순하게 생각하는 인물인 것이다.

그리하여 셋째는 솔직히 가장 걱정 없이 아버지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여자애다.

뭐든 아빠에게 말하고, 아빠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딸.

아버지 입장에선 가장 마음 놓는 자식일 것 같다.

 

 

화면 색깔이 예뻐서 찍은 장면.

아버지가 집 담장 안으로 들어온 '고양이'를 '괴물'로 설명하기 위해

'담장 밖 너네 형은 고양이한테 죽었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첫째가 맨날 담장에 서서 얘기하는 대화 상대다.)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도 기이하게 웃기고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도 기이하게 웃기다.

부조리해. 좋다.

 

 둘째

 주인공.

크리스티나한테 비디오 2개를 뺏는다. (약점을 잡아서 비디오를 내놓게 하는 방법을 썼다.)

비디오를 본 후 담장 밖으로 나가고 싶어 견딜 수 없다.

이 영화의 매력은 그러나 그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디오에 나온 대사를 줄줄 외우는 장면.

밖에 나가고 싶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아도 이 장면에서 둘째의 심정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대사를 외우다니! 아버지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 세계 속 아이들은 그런 계산은 안할 것 같다.

숨기고 거짓말하는 걸 잘 해보지 않아서 숨겨야한다는 개념도 없는 듯하다.

결국 아버지한테 비디오를 걸리고 비디오로 맞는다.

 

아버지가 누누히 말씀하시기를,

자식이 부모를 떠나는 것은 때가 될 때나 가능하다.

적절한 때. 바로, 송곳니가 빠지는 때다.

그리고 둘째는 어쩐지 송곳니가 흔들리는 것 같다고 셋째에게 말한다. 젓니 다 빠진, 건강한 20대 여자에겐 물론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치만 이 세계에선 송곳니는 의미심장한 단어가 된다.

 

 

가족들이 모여 파티를 벌이는 장면.

이 장면 정말 좋았다. 또 봐도 좋다. 계속 좋다. 정말 괴랄하다!

아버지 어머니는 관중이고 아이들이 재롱을 떤다.

다 컸는데, 엄청 컸는데, 프라이버시고 뭐고 없이 열심히 재롱을 피운다!

기이하다.. 웃기고, 불편하다.

 

 

끄앙. 이 장면에서 예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뜨악했다.

ㅠㅠ 욕구가 강하면 이렇듯 겁없어질 수 있구나.

둘째는 담장 밖으로 나가고 싶어 송곳니를 아령으로 쳐서 부러뜨린다. 끄악.

이 웃음은 일반 성인 여성이 뭔가를 '성취'했을 때와 같은 웃음이 아니다.

'이제 나갈 수 있어!'라는 지극히 단편적인 성취로 나오는 웃음.

주인공의 선택에 지지를 보내지만 끝내 공감하거나, 마음 놓을 수 없는 게 이 때문이다.

현실은 너무 삭막하고 무시무시한데 너는 그 순진해빠진 상태로 나가려고 하는 거야? 라는

찝찝한 걱정이 든다.

'성인이 되면 반드시 차를 타고 이동해야하는 거야.'

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트렁크에 타는 둘째.

숨을 의도가 있었을까? 그러니까, 아버지가 자기를 안 보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럼 왜 좌석이 아니고 트렁크에 탄 걸까?

의문이 드는 점.

 

 

마지막 장면

트렁크에서 나오는가, 못 나오는가 보여주질 않고 끝난다!

심지어 차가 흔들리는 건지, 가만히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오발탄에서처럼 과다출혈로 죽은 게 아닐까.. 아냐아냐, 살아 있을 거야. 빨리 트렁크 문을 열고 나와줘!

ㅠㅠㅠ 그러나 <랍스터> 영화처럼 이 영화도 정말 애매한 결말을 내게 선사했다. 크헝.

 

우화 영화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주아주 적나라해서

보기에 쉽고 또 불편하다.

다른 영화에서 빙빙 돌리거나 많이 희석해서 표현하는 것들을 눈 앞에 딱 들이대다 보니

뒷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눈이 확 떠지고 또 죄를 지은 듯 창피해지기도 한다.

인물들의 감정은 그렇게 깊지 않고 단순한대도 영화를 다 보고나면 지치는 건 이 때문이다.

그래도,

우화 좋다. 설정이 기발한 경우가 많고, 부조리가 가득 담겨 있지 않은가!

하릴없이 우울한 날, 또 우화영화를 찾을 것 같다. 호홍.

 

 

덧붙여, 훨씬 전문적으로 본 영화를 분석한 글 링크를 소개한다. 알고보니 <랍스터>와 <송곳니>는 같은 감독의 작품이었다!! 세상에.

http://www.thearti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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