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0권 책읽기에 도전하고 있지만, 늘상 평균 독서량은 20권 내외인 것 같습니다.

올해도 현재 기준(2021.12.23) 20권의 책을 읽었네요!

내년에는 독서량보다 독서의 깊이를 늘려볼까 생각 중입니다. 20권 내외는 똑같이 읽되, 블로그에 독서 후기를 쓰는 거죠. 책 리뷰 카테고리를 만들어놓고도 몇 년째 묵혀두고만 있으니 오랜만에 들른 블로그 창에서 조금 창피해지네요.

갈팡질팡하고 때로는 힘겹기도 한 나의 인생에는 그래도 많은 기쁨과 행복이 자리하는데, 단언컨데 독서는 그 중에서 늘 빠지지 않고 나를 빛으로 이끌어주는 활동입니다.

내년에 부디 20개의 책 리뷰가 쓰이길 바라며.

 

이하 책 20권이 2021년 나의 독서 목록입니다:)

딱히 유용한 내용은 아닙니다만, 생각나는대로 사족을 덧붙였습니다. 혹시나 구미가 당길만한 책이 있다면 기쁠 것 같네요.


(1) 오스틴랜드

사실, 동명의 영화를 먼저 보고 너무 매력적이라 책까지 찾아보게 된 경우입니다.

영화는, 말도 안되는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책도 그렇고요. 

언제나 마음 속 한켠에 살아숨쉬는(!) 제인과 다아시의 로맨스가 다른 시대, 다른 상황들과 엮이면서

또다른 설렘과 풋풋한 낯간지러움(!)을 만들어냅니다. 유치하고 환상적인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언제나 가장 좋은 마음치유제라고 생각해요!

 

(2) Gregor 시리즈 (총 5편인데 4편까지 읽음)

수잔 콜린스의 책이라는 이유로 읽은 판타지 소설 시리즈입니다. 아직까지 5권을 못 읽었네요.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다른 책을 읽느라 밀려났습니다. 참고로 수잔은 <헝거게임> 시리즈의 작가입니다. 저는 헝거게임을 정말, 정말 사랑해요. 캣니스 만세!! 거의 읽을 때마다 비슷한 지점들에서 펑펑 우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 소설치고는 심각한 주제들도 나오지만, 아무래도 주인공이 12살이다보니 그렇게 암울하거나 잔인한 결말로 치닫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헝거게임보다 먼저 쓰인 이 소설은 그러나, 헝거게임만큼의 이면의 주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러나 그녀가 창조해낸 지하세계는 놀랄 만큼 매력적이어서 일단 읽으면 지루함 없이 술술 읽히는 책입니다.

 

(3) 우리가 날씨다

육식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축산업, 특히 소를 기르고 도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기후변동 요인들을 지적하고 아침과 점심에서 고기 소비량을 줄일 것을 주장하고 있지요.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고, 언뜻 너무 희망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꾸준히 실천한다면 충분히 지구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거라 여겨지는 실천 방식입니다. 제로웨이스트와 비거니즘이 나날이 떠오르는 이 시대에 지구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아야 하는 하나의 개체로서 어떤 사명감과 의무감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우리, 자연과 오래오래 평화롭게 공존합시다!

 

(4) 이너 시티 이야기

도시에서 벌어지는 작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동물과 환경을 주제로 한 짧지만 깊은 이야기들과 환상적인 일러스트가 정말 매력적인 책이예요. 왼쪽 상단에 보이는 마크로 보건데, 아마 동화책에 수여하는 어떤 상을 받은 것 같은데요. 뉴베리상일까요? 무튼, 상을 받을 만했다고 생각합니다. 멋진 이야기들, 때로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야기들이 며칠 간의 제 밤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거든요.

 

(5) 앨비의 또 다른 세계를 찾아서

물리학을 한 편의 소설로 녹여낸 책입니다. 앨비가 세상을 떠난 엄마의 죽음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철학적 물음과 물리학적 이론을 이용하여 풀어냅니다. 가벼운 청소년 소설 같은 도입부를 읽다보면 음, 조금 유치하군, 생각하겠지만 후반부엔 때아닌 슬픔과 감동에 압도되어 눈물을 흘리지도 모릅니다! 참고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완전 전문적인 물리학 지식을 알 수는 없겠지만 개념을 파악하는데도 유용한 책입니다.

 

(6) 걸크러시 1, 2

역사상 멋진 여성들의 삶을 다룬 만화책입니다. 참고로 저는 여성이고요. 대략 3번의 강산이 바뀌는 시간을 살았지만 여전히, 여전히 다양한 여성의 모습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더 많은 서사들, 더 많은 개성의 인물들, 그리하여 더 많은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기를 바라요. 사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은 현재 기준으로 봐서는 조금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그들은 지금과는 다른 기울기를 가졌던 시대에 살았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읽고 나면 더 큰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나에게 더 새로운 여성 서사를 달라!! 사족으로, 그게 제가 현대에 쓰여진 소설들을 사랑하는 이유지요.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에서 그녀들이 정말 말도 안되는 방향으로 달려나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짜릿하거든요. 그래요, 무척이나 짜릿합니다!

 

(7) 우먼월드 - 여자만 남은 세상

역시나 흥미로운 가정을 담은 만화입니다. 걸크러시와 함께 빌린 책이예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전세계에 돌면서 모든 남성들을(!) 멸종시키고 지구상에 오직 여성들만 남기게 되었다는 설정에서 출발하여 여성들이 꾸려가는 세상을 그려냅니다. 조금 급진적인 발상이기는 하지만, 재밌고 유쾌합니다.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세계는 사실 그간 다양한 소설에서 이미 만나본 바 있죠. <파리대왕>이나 <메이즈러너>시리즈나, <스탠드 바이 미>시리즈, <그것>시리즈 (물론 이 세 작품은 여자가 등장하지만.. 한 명이죠, 단 한 명!!) 등을 통해서요. 엄밀히 말해서.. <반지의 제왕>시리즈도 결국 구성된 세계는 거의 남성들이 모든 서사를 차지하는 세계죠. 슬프지만, 그렇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는 여성인 관계로, 사실 서사의 중심이 여성인 경우가 훨씬 재밌습니다. 솔직한 얘기죠.

그래서인지 이 책은, 그렇게 웅장하거나 꾸준한 서사가 없이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제 맘에는 들었습니다. 일단 그 발칙한 상상부터 마음에 들었죠. 가볍고, 낄낄대며 볼 수 있는 그런 책입니다.(특히나 여러분이 여성이시라면요. 물론 파리대왕과 메이즈러너와 숱한 스티븐 킹의 작품을 재밌게 읽었던 저와 같이, 많은 남성들도 여성 서사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요!)

 

(8) 이카보그

조앤 K 롤링의 소설입니다. 그녀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끝으로 더는 청소년/아동 문학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계속되는 코로나 시대에서 희망을 전하고자 다시 해당 분야의 책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선 이 암울한 시대에도 조금의 고마움이 생겨나네요. 재밌고, 재밌고! 멋진 소설입니다. 이카보그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도시 너머에 살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그 공포를 이용하여 독재하려는 왕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요.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가 끝까지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그리고, 잊고 있던 롤링의 그 재치와 입담!이 정말 정말 반가운 소설이예요!

 

(9) 완전한 행복

정유정 작가님의 스릴러 소설입니다. 재밌고 오싹오싹한 소설이죠.

행복의 완전성에 대한 뒤틀린 해석이 이상한 방식으로 논리적이어서, 신선하고 재밌었습니다. 주인공은 매력적이고 주변 인물들도 호락호락하지 않죠.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비밀이 풀리는 방식은 어찌보면 무난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속에 놓여있는 반전들과 주인공의 기묘한 철학들을 생각하면 전혀 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은 정말 독특한 악인을 만들어내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성공하신 것 같아요. 읽는 내내 우와, 이 소설을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제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예요)에서 다루면 진짜 재밌겠다 생각했으니까요.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진수를 보여주는 빌런을 만나고 싶다면, 완전한 행복 추천합니다:)

 

(10) 보통의 언어들

김이나 작사가님의 에세이집입니다. 제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인 <비혼세>에서 혼세님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추천하셨던 책이라 호기심에 읽었답니다. 사실 에세이는 재밌게 읽는 편이 아니라, 이 책도 엄청 빠져들어서 읽었다고 보기는 어렵겠습니다..만, 한 편 한 편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다고 평할 수는 있겠네요.

 

(11) 시인과 서커스

꾸준한 독서에서 찾는 즐거움 중 하나는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는 것이겠죠. 저는 수잔 콜린스, 스티븐 킹과 함께 트레이시 슈발리에를 사랑합니다! 트레이시 작가님의 책은 모조리 다 읽었는데요, 시인과 서커스는 어쩐지 구미가 당기지 않아서 오래도록 묵혀놨다가 올해가 되어서야 드디어! 읽게 된 책입니다. 저는 작가님이 만들어내는 닿을 듯 닿지 않아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로맨스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요, 이 책은 뒷 표지에 적힌 소개에서처럼 로맨스가 거의 없는 책이랍니다. 아마 그래서 제가 그렇게 읽기를 무한정 미뤘던 것이겠죠. ㅎㅎ..

그러나 책은 재밌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던 시대,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어요.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시대적 한계와 그 한계에 오직 하나의 몸으로 맞서려 했던 시인을 만나며 부서지고 성장합니다.

 

(12) 희란국연가

네이버웹툰에 새롭게 연재를 시작한 동명의 웹툰을 몇 화 보고선 우와, 이건 읽어야 해!라며 부랴부랴 대출했던 기억이 있네요. 그 말로만 듣던 서브병에 걸려서 읽는 내내 마음을 졸였습니다..! (더 이상은 스포일러라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마냥 환상적인 얘기만을 기대했던 제게, 너무나 충격적인 시련을 겪는 주인공의 모습은 정말로 신선(!)했어요. 결말 또한 그러했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 

 

(13) 고래가 가는 길

교보문고 과학 분야에 새로 나온 책으로 전시되어 있던 책입니다. 카네기 상을 받았다는 홍보 문구에 끌려 덥석 구입해버렸지요. 결과적으로 만족스럽습니다.

처음엔 고래의 거대한 항해 여정을 따라가는 책이 아닐까, 제목만 보고 추측했지만 실상은 환경을 이야기하는 책이더군요. 꿀벌의 역할처럼, 고래가 이 지구에 기여하는 역할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중요하고 인류가 그 중대함을 얼마나 쉽게 무시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고래가 오랜 시간의 축적물이고, 그 결과 오늘날의 고래는 오랜 시간 바다에 쌓인 환경폐기물을 축적한 살아있는 환경오염의 결정체라는 그 이야기가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고래는 과거에 인간들의 신이었고, 역사 속에서 인간들은 그 신을 바다에서 끄집어내어 더럽혔지요. 그 끝에서 우리는 다시 신을 바다로 돌려보내며 과거의 영광을 기원했지만, 돌아간 고래를 맞이한 건 똑같은 바다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끄집어낸 건 신 뿐만이 아니라 신의 모든 세계였거든요. 신이 사라진 시대에서, 더 이상 미지와 환상이 없는 이 시대에서 남겨진 것은 끝도 없는 폐기물과 쓰레기인 이 시대에서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지점을 밟기 전에 멈출 수 있을까요?

이런 너무나 성큼 다가와버린 문제들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 이 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추천 추천합니다.

 

(14)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

헝거게임 시리즈의 연장선 상에 놓인 소설입니다. 헝거게임에서 최대 악인이었던 스노우 대통령이 이 책에서는 주인공이죠. 악인의 스핀오프를 그렸다는 점에서 너무나 신선하고 흥미로웠습니다. 무조건적인 악이 아니라 설명이 가능한 악, 서서히 그렇게 만들어져가는 악을 악인의 관점에서 본다는 건, 가끔은 소름돋고 가끔은 짠해지는 그런 경험이었습니다. 게다가 헝거게임 팬인 저로서는 이 책에 녹아들어 있는 헝거게임에 관한 단서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정말 엄청났습니다..! 헝거게임을 모른다고 해도(물론 알면 더 재밌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기승전결이 완벽한 훌륭한 소설이라 할 수 있겠네요. 추천!

 

(15) 피로 물든 방

성인을 위한 동화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소설집입니다. 빨강망토와 늑대를 비롯하여 여러 동화들을 모티브로 한 오싹하고 에로틱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습니다. 작가가 자꾸 소변 냄새와 성애를 엮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동의하진 않지만(..) 날 것의 여성과 남성을 긴장감 넘치게 그려낸다는 게 정말 매력적이라는 덴 이견이 없네요. 자우림 김윤아의 솔로 앨범에 삽입된 곡 <나는 위험한 사랑을 상상한다>의 내용처럼, 그래요, 어쩌면 누구나 위험과 사랑의 공통점을 알고 있고 그 판타지를 꿈꾼다면 이 책은 그 환상을 어느 정도 구현해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저한텐 그 환상의 달콤함이 통한 것 같네요..!

 

(16)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

<나사의 회전> 소설을 리메이크 한 작품이 많이 있죠. 이 소설도 그 중 하나입니다.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의뭉스러운 아이들과 쉽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다른 고용인들과 함께 외딴 저택에서 고군분투하는 가정교사의 이야기를 담았지요. 그러나 작가의 필력 덕분에 다 알고 있는 이야기도 매우 오싹오싹하게 느껴지고, 원작과는 다른 이야기와 반전도 있어서 특히나 결말에서 결국 먹먹해지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저는 책 읽고 꽤나 자주 웁니다. 아주 자주요.) 작가의 전작 <인 어 다크 다크 우드>도 흥미롭게 읽었지만, 사실 결말이 너무 시시해서 실망한 기억이 있는데요, 이 책은 전작과 달리 결말이 너무 강력해서 더 마음에 들었던 작품입니다.

 

(17) 티어링의 여왕 (총 3부작)

가장 최근에(그러니까 어제) 다 읽은 소설입니다. 사실 총 3부작이라 그 중 첫 번째를 끝냈으니 아직 티어링 세계의 즐거움을 끝낸 것이 아니라 행복하군요. 아주 재밌고 아주 흥미롭고 아주 마음에 드는 작품입니다. 책 뒷표지에는 <헝거게임>과 <왕좌의 게임>을 섞은 듯한 작품이라는 평이 달려 있는데요.. 사실 그게 저에겐 셀링포인트였습니다. (저는 헝거게임을 매우 사랑하기 때문에..)

정말이지 너무 멋진 주인공이 등장해서 무진장 타락해버린 국가 티어링을 다시 재건해나가는 이야기인데요, 스스로 진정한 여왕으로 거듭나가는 이야기이자, 자신을 믿고 따를 주변 사람들을 모아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인 켈시는 정말로 본받을 점이 수두룩하고 심쿵 포인트가 정말 많아요. 헝거게임의 캣니스처럼요. 아마 그 부분에서 헝거게임과 비교되는 것 같습니다. 뭐, 독자로서는 캣니스든 켈시든, 그런 멋진 여주인공들이 더 많이 나와준다면 그저 행복하고 반가울 뿐이니, 쌍수 들고 환영할 뿐이죠. 야호 야호!

사실, 2편은 이미 빌려온 상태이니, 앞으로 얼마간은 더 행복한 독서의 밤을 지낼 수 있겠군요. 좋습니다:)


 

이것으로 2021년 읽었던 책 정산을 마칩니다. 정말 긴 글이군요..!

다 쓰고 나니 뿌듯하고, 1년을 죽 돌아본 느낌이라 떠오른 여러가지 기억들에 반갑고 즐겁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저한테는 기록의 의미로 충분히 도움이 되었으니..)

이만 포스팅을 마칩니다.

[피의 연대기] 다큐멘터리를 보았어요. 거기서, '우리가 더 잘 흘리기 위해' 많은 여성분들이 생리컵 정보를 알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래서, 생리컵을 약 1년 가량 사용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저도 제 경험을 올리려고 합니다. 누군가 생리컵 폭풍 검색 시기를 거치면서 제 포스팅을 보고 '흠, 그래, 이렇단 말이야?'하고 약간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하, 하지만 다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며 뭐든 스스로 탐험하고 알아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건 알고 계시죵? 우리 모두 용감하게! 우리 스스로를 더 잘 알고 사랑하기 위해! 우리 앞에 놓인 금기를 깨뜨려나갑시다.

 

일기장을 뒤져본 결과 처음 생리컵을 삽입했던 때는 2019년 2월 25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생리컵을 쓸 생각을 했냐면요, 그때가 아마 좋은 느낌이나 화이트나 생리대들에서 화학 약품이 다량 검출되었다는 일명 '생리대 파동'이 나고 얼마 안되어서였을 거예요. 가뜩이나 일회용으로 쓰고 버려야 하는 생리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데다(환경에도 엄청 안 좋고,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지출이죠) 짐작만 하고 있던 일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더 이상 일회용 생리대를 쓰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그러던 중 문득 생각났던 게 제가 중학교 다녔을 때 제 친한 친구가 썼던 '면 생리대'였습니다. 그 친구가 엄청 엄청 부자였는데, 당시엔 왜 돈도 많으면서 면생리대를 쓸까? 기저귀 같고 불편할 것 같은데..라고 생각만 했던 기억이 있죠. (그나저나 문득 궁금하다. 잘 살고 있늬 친구야) 그래서 당장 인터넷을 들어가 면생리대를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따란~ 연관 검색으로 '생리컵'을 알게 되었던 것이죠!

질 안으로 실리콘 소재의 컵을 집어넣어 생리혈을 받아낸다는 눈튀어나오게 기똥찬 발상에 희열을 느꼈습니다. 아니 그럼 더 이상 피묻은 엉덩이나 굴 낳는 느낌이나 이불에 피묻을까봐 뒤척이던 밤은 없다는 얘기잖아?

그 길로 유튜브 들어가서 생리컵 후기를 왕창 찾아봤어요. 어떻게 접는 건지, 어떻게 넣는 건지, 한번 넣으면 얼마까지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건지, 유통기한은 없는지, 관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등 이미 생리컵에 관한 정보가 잔뜩 있더라고요.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던 게 신기했습니다. 이런 신세계를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첫번째 생리컵, 페미사이클

제 첫 생리컵은 '페미사이클'이었어요. 제가 생리양이 많다고 판단했었고, 피가 샐 거라는 걱정이 많았기 때문에 일단 용량이 크고 흘림방지가 이중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결과적으로 골든컵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리고 페미사이클은 국내 식약청이 허가한 제품이라 이미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어요. 해외배송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던 거죠. 이미 생리컵에 대한 호기심이 최고에 달했던 저는 제일 빠르게 받아볼 수 있는 페미사이클을 뙇!하고 주문했습니다.

첫번째 삽입과 제거

페미사이클은 가로로 넓고 무척 딱딱해요. 일단 접는 거부터가 난관이었죠.(생리컵 접는 법도 정말 다양한데 유튜브에서 생리컵 접는 법으로 검색하면 정말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여러 동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으실 거예요)

접어도 질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지지 않아! 

결국 제 방에서 팬티까지 다 벗고서 혼자 생쇼를 했답니다.. 책상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끙끙대며 생리컵을 질 안에 넣으려고 온갖 시도를 다 해봤어요. 하지만 일단 한번도 제 질의 구멍을 만져본 적이 없었기에 도대체 그 구멍이란 게 어디 있는지 그것부터가 난제였죠. 피가 방바닥이며 의자며 온 사방군데에 다 흐르고 어찌나 긴장했는지 두 다리가 벌벌 떨렸습니다. 거의 30분은 끙끙댔을 거예요. (아..지금 생각하니까 진짜, 웃기고 슬프네요. 하지만 여러분,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경험이 무척 값지다고 생각해요. 우리 생식기의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건 중요하죠)

결국 어떻게든 쑤셔 넣었는데, 페미사이클은 탄성이 강하다보니 바로 몸 안에서 펴졌습니다. (물론 이 당시엔 펴졌는지 어쩐지도 잘 몰랐어요. 그냥 피가 안 새니까 아..자리를 잘 잡았나보구나 했죠.)

근데 이게 배 아래가 묵직해서 뭔가 이물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생리컵 사용 후기에 '배에 가스 찬 것 같은 느낌이다'라는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바로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페미사이클은 저의 골든컵이 아니었던 거죠.)

게다가 생리컵을 뺄 때!!!!

ㅠㅠ 아.. 아직도 그 고통을 잊지 못합니다. 페미사이클은 크거든요. 그래서 질 안에 손을 넣어서 생리컵을 잘 접은 다음에 빼줘야해요. 근데, 초보인 제가 그게 될 리가 없죠!! 어눌하게 접어서 빼다보니, 그리고 역시 잔뜩 긴장한 채라 질근육도 경직된 상태에서 빼다보니 미친듯이!! 미친듯이 아팠습니다!!!!ㅠㅠㅠㅠㅠ

결국 두어 번 사용한 후 다시는 페미사이클을 사용하지 않았어요. 엉엉.. 원래 이렇게 아픈건가..

사실 페미사이클이 골든컵이었다는 사람도 많아요. 그럭저럭 쓸 만했다, 특히 양 많은 날에 유용하다는 리뷰도 많죠. 제가 오죽 슬펐으면 페미사이클 리뷰해놓은 블로그에다가 '뺄 때 원래 이렇게 아픈 건가요?' 묻는 댓글을 달기도 했어요. 근데 그 분이 답변해주시기론 안 아프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 페미사이클은 나한테 안 맞나보군' 그렇게 판단을 했답니다. 넣고 뺄 때 안 아픈 생리컵을 찾아야겠다! 결심을 했더랬죠.

그리고 다시 폭풍 검색!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엔 '생리컵 사용 초보'에게 맞는 생리컵 위주로 알아봤어요. 해외직구도 상관없이 하리라! 생각하고요. 그랬더니 주로 크기가 작고, 실리콘 소재가 적당이 유연한 생리컵들이 추천되더라고요. (이것도 역시, 블로그 포스팅이나 유튜브로 찾아보시면 쉽게 찾으실 수 있습니다!)

제가 선택한 건 '슈퍼제니'의 '틸' 종류의 생리컵이었어요. 용량은 (제가 기억하기론) S나 M이었을 거예요. 용량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데 이미 큰 사이즈의 생리컵은 저한테 안 맞는다는 걸 경험했던 저는 적당한 용량에 최대한 작은 생리컵을 구하려고 했거든요. 슈퍼제니는 같은 크기에 비교적 용량이 크게 나오는 제품이라 선택했답니다!

이 중 '틸'은 실리콘 탄성이 중간 정도인 종류를 의미해요.

결과적으로, 이 제품은 넣을 때도 무리없이 들어갔고, 빼낼 때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요! 넣은 다음에 배에 가스가 찬 것 같은 느낌도 없었고요!

그러자, 엄청난 행복과 편안함만 남았습니다//-//

 히히, 생리컵을 써서 좋은 점은 다른 포스팅에 담으려고 해요.

무튼, 생리컵 쓰는 것에 망설이는 분들! 이것은 신세계! 분명 우리의 또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어요. 무조건 거부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써보고 판단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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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영화 스포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별 기대 없이 영화관에 갔다. 지인이 평하기를 '지루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 걸, 보는 내내 몰두했다.

돌이켜보면 집중과 몰입을 이끌었던 일등공신은 아무래도 '소리' 같다. 영화는 내내 불편한 선율과 틱틱 끊어지는 리듬을 들려준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장면을 보다보면 아주 평범해보이는 장면도 의미심장해지고 불편해진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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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미드소마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대략이라고 했지만.. 쓰다보니 아주 상세해졌다. 하핫.)

주인공 Dani는 조울증을 겪는 동생, 이라는 커다란 가족 문제가 있다. 그리고 4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남자친구인 Christian과 이 문제를 나눠왔다. 문제는, 대니가 이런 상황에 대해 크리스티안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거고 크리스티안도 마찬가지로 대니의 가족 문제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크리스티안의 친구들도 크리스에게 '더 어리고 섹스를 즐겨 하는 여자'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어쩌면, 어쩌면 크리스티안은 친구들의 조언을 따를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대니에게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친구들과 스웨덴에 갈 계획을 짜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일은 크리스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어느날 밤, 대니의 동생과 부모가 모두 가스로 질식사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평소 조울증을 앓았던 동생이 일부러 가스를 흘려 부모를 죽이고 자살한 사건이었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어벌인 대니 앞에서 크리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저 위로해줄 수 밖에.

위로는 곧 스웨덴 계획에 초대하는 말로 번지고, 동생의 죽음이 따라다니는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던 대니는 크리스와 친구들을 따라 스웨덴에 가기로 결정한다. 

친구들은 왜 스웨덴에 가는가? 그들은 대학원 동료들이다. 그 중 스웨덴에서 온  'Pelle'가 이들을 자신의 공동체에 초대했다. 스웨덴의 자연 속에서 일반 사회로부터 단절된 채 나름의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공동체인데 이곳에서 90년 만에 처음으로 성대한 하지 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인류학과로서 하지 축제를 논문 주제로 삼고 있는 'Josh'를 비롯하여 대학원 동료들은 펠레의 초대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물론 우울한 크리스의 여자친구 대니가 같이 가게 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여름은 길고 새로운 축제는 언제나 대환영이니까.

도착한 공동체는 매우 아름답다. 모두들 하얀색 옷을 입고 분주히 축제 준비를 한다. 마주치는 모두가 인사를 건네고 환영의 미소를 보낸다. 펠레처럼 외부에 있다 돌아온 다른 청년들도 외부에서 사람들을 초대해왔다. 외부인들은 모두 한 숙소에 머물며 안면을 트고 지낸다. 그리고, 

일이 벌어진다.

 

일이란 건, 물론 끔찍한 일이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니까. 예를 들어 76세(정확하지 않다)가 된 두 남녀가 절벽에서 스스로 떨어져 죽는다. 공동체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축제 의식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사람이 처참하게 바위에 머리를 박고 죽는데도 경건하게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물론, 외부인들 중 이 모습에 경악하곤 이곳을 떠나겠다고 외쳐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갑작스럽게 사라진다. 아, 대학원 친구들 중에서 특히 공동체의 신경을 거스르는 이도, 공동체의 금기를 어긴 이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이들은 이후 아주 끔찍한 모습으로(그러니까 죽은 시체로) 축제 의례의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다.

왜 이들이 이토록 갑작스럽게 사라질 수 있었느냐고?

남은 사람들이 사라진 사람들을 그렇게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껏해야 공동체 와서 만난 사람들이었고 대학원 친구라는 이름은 '같은 주제로 논문을 쓰고 싶어했을 때' 한순간에 라이벌로 바뀔 수 있을 정도로 얄팍한 이름이었으니까. 반면 외부인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공동체 사람들은 맹목적인 믿음 속에서 스스로를 '가족'이라 칭하는 이들이었다. 어떤 갈등이나 분란도 생기지 않는 완벽히 얽어진 관계들. 그래서 그 관계들이 외부인들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을 때 외부인들 간에 걸쳐져 있던 관계의 끈은 별 저항 없이 뚝뚝 끊어지고 말았다. 이를 위해서 공동체 사람들은 그저 약간의 거짓말과 약간의 마약 성분이 들어간 약초, 그리고 친절한 미소를 이용했을 뿐이다.

그리고 상피적인 관계의 절정은 바로 결말이다.

결말에서 주인공 대니는 남자친구를 버리고 혼자 살아남았다.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그가 공동체의 한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약물을 먹은 상태였고, 근친상간을 피하기 위해 외부인 아이를 가져야만 하는 공동체에 이용당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대니는 그걸 몰랐을까? 대니는 크리스의 상태가 전혀 좋아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대니가 그렇게 멍청할 리가 없다. 그녀는 아마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을 거다. 공동체가 외부인을 비롯해 그녀 남자친구의 친구들을 다 죽였고, 남자친구마저도 죽일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선택을 한 것이다. '너는 그들 편이야? 아니면 우리 편이야?' 공동체가 물었을 때 '너희 편이야.'라고 말한 것이다.

 

사실 대니는 운이 아주 아주 좋은 편이었다. 일단 공동체의 남자인 '펠레'가 그녀를 맘에 들어 했고, 그녀는 축제 기간 중 '5월의 여왕'으로 뽑혔다. 5월의 여왕은 남은 축제 기간 중 일인자로 대접받을 수 있는 높은 지위를 갖는다. 즉, 그녀는 쓸데없는 짓만 안한다면 살해 당하지 않을 명분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공동체는 대니를 다른 외부인들처럼 당연히 '죽여야 할 제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니에게 선택권을 준다. 이렇게 묻는다.

'이제 우린 가족이죠?' 

이건 다른 말로 하면 이런 질문이다. 

'넌 그들 편이야? 아니면 우리 편이야?'

 

그리고 대니는 말했듯이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들 편입니다.'

 

왜?

왜 대니는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고 묻는다면 아주 복잡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선 광기어린 공동체 사람들이 무서웠을 거고, 

아무리 약물에 취한 상태라지만,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가진 남자친구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도 있었을 거고

혹은 잃어버린 가족, '공동체' 안에 다시금 소속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대니가 남자친구를 버린 선택을 한 것에는 '공포'가 가장 커다란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맨 마지막에 대니가 불타는 시체들(곰가죽을 뒤집어쓰고 산 채로 불타는 남자친구를 포함해서)이 들어있는 불타는 집을 바라보면서 살짝 미소짓는 것은 '살아 남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으레 모든 광기어린 축제가 그렇듯 제물을 바치면 그건 축제가 끝났다는 의미니까. 

불타는 재물들을 보며 대니는 '이제 살았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이제 살았다.'

그리고 이건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관계가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로맨스 영화나 힐링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Unbreakable Bonding'이 얼마나 허황된 소리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4년이나 함께 지낸 연인은 이제 대니에게 그저 '재물'에 불과하고 '축제 의식의 마지막'에 불과하다. 공포로 마비된 그녀의 머릿 속에는 '내 연인이 불타고 있다', '저 공동체에 복수를 해야지'라는 생각보다 오로지 '아, 드디어 끝났어. 난 살아남았어'라는 안도감이 가득하다.

사실 맨 처음 외부인 중 한 여자가 사라졌을 때 누구보다도 걱정했던 대니이지만, 영화 끝에서 대니는 끔찍한 시체가 되어 제물로 바쳐지는 그 여자를 보고도 꿈쩍하지 않는다. 조쉬, 마크, 등등 한때 알았던 친구들의 시체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공포 앞에서 인간관계는 파스슥 사라져버렸다. 정말 파스슥 하고.

 

결국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나는 서글픈 공포감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우리가 애써 쌓아가는 이 인간관계는 왜 이렇게 연약한 걸까? 만약 내가 가족들과 같이 저런 공동체에 초대받는다면, 나는 내가 살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가족들과 함께 잔인한 도륙의 길로 걸어들어갈 수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어.'

이런 섬뜩한 생각.

그리고,

정말 부서지지 않는 관계를 구축하려면 미치광이 신도들이 되어야 하는 걸까? 아주 많이 미쳐있기는 해도 관계 면으로 보자면 영화 속 공동체 사람들은 아주 밀접하고 친근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었지. 우리가 완벽한 관계를 맺으려면 저렇게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광인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이런 생각.

혹은 '저렇게 미쳐야지만 얻을 수 있는 관계라면, 갈등 없는 완벽한 관계란 얼마나 웃기는 망상인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인간관계'에 도움을 청해야 할 때, 그 관계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에서부터 

발현된 공포스러운 상황을 '미쳐버릴 것 같이 불안한 소리'와 '끔찍한 영상미'로 잘 풀어낸 영화가 바로 '미드소마'인 것 같다. 

우와. 정말 두서 없는 글이군.

 

아무튼 추천이다. 추천. 안 지루하다. 

P.S 'Midsommar'는 스웨덴어로 '한여름'이란 뜻이란다. 장마가 끝나면서 8월 내내 무더위가 계속될 듯 싶다. 한여름엔 역시 공포영화지. 해양 공포영화가 땡긴다.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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